치열한 논쟁으로 나라 질서 다잡다 ③
용선생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거듭된 환국으로 조정이 어지럽던 이 무렵, 세금 제도에 큰 변화가 일어났어. 너희들 공납이 뭔지 기억하고 있니? 지방에서 나는 특산물을 나라에 세금으로 바치던 것 말이야."
"맞다! 신분 체험 갔을 때 농민 아저씨가 공납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그러셨어요." 조선 신분 체험에서 농민의 딸 역할을 맡았던 나선애가 먼저 기억해 냈다.
"그래. 각자 자기 일에 바쁜 백성들이 일일이 특산물을 구해야 하는 것부터가 불편하고 힘든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공납이 더 큰 골칫거리가 된 것은 방납이 널리 퍼지면서였어. 방납이란 백성들에게 대가를 받고서 공납으로 바칠 공물을 대신 내주는 걸 말해. 주로 낮은 관리나 상인들이 이 일을 했는데, 문제는 이들이 중간에서 이득을 남기려 드는 거였어. 공납을 내야 할 사람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무조건 대신 낸 뒤에 강제로 이자까지 쳐서 대가를 비싸게 받아 냈지."
"어휴, 너무하네. 벼룩의 간을 내먹지." "결국 나라에서는 공납 제도를 고쳐 대동법을 실시하기로 했어. 대동법이란 집집마다 똑같이 내도록 되어 있던 공물을 토지에 매겨서 쌀이나 베 등으로 걷는 제도야. 공물을 쌀로 대신하면서 백성들은 더 이상 방납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고, 공물의 품질이 제각각이거나 보관하고 나르는 과정에서 상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지. 방납으로 중간에서 세금을 가로채는 이들이 사라지자 나라 재정에도 도움이 됐고."
"아, 잘됐다! 농민들이 한시름 덜었겠네요." 선애가 농부 아저씨들을 떠올리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근데 양반들은 대동법을 좋아하지 않았어. 대동법은 토지에 따라 쌀을 내도록 했으니 가진 땅이 별로 없는 일반 백성들의 부담은 줄어들고 땅을 많이 가진 양반들의 부담은 커지지 않겠니? 그러니 양반들의 반대가 심했지. 하지만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 내고 세금 제도를 좀 더 공평하게 개혁하고자 한 관리들이 꾸준히 추진한 끝에 결국 대동법이 전국에서 시행된 거야. 아까 말했던 송시열은 왕뿐 아니라 양반들도 부당한 특권을 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동법에 찬성했어. 그런데 대동법이 실시되자 나라에서는 공물로 거두던 물품들을 더는 얻을 수 없게 됐겠지? 이때부터 나라에서는 필요한 물품들을 사서 쓰게 됐어. 아예 나라에 물품을 대 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상인들도 생겨났는데, 그들을 '공인(貢人)'이라고 불러. 공인들의 활동으로 물품을 사고파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수공업도 발전했어. 여러모로 대동법은 조선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킨 셈이지."
"신하들끼리 싸우기만 한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네." 허영심의 말에 나선애가 "가만!"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붕당 정치는 어떻게 된 거죠? 동인과 서인이 대립하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고, 그중 북인이 광해군과 함께 쫓겨난 뒤 남인과 서인이 오랫동안 싸우다……."
조근조근 짚어 보던 선애가 잠시 뜸을 들이자 왕수재가 불쑥 끼어들었다. "결국 서인의 승리! 끝."
"아니, 끝이면 좋겠지만 더 있어. 서인은 남인과 겨루는 과정에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었어. 남인에 대해 강경하게 대하자고 주장하는 노론과 온건하게 대하자고 주장하는 소론이었지. 이 두 세력은 숙종의 뒤를 이을 왕을 누구로 정할지를 두고 대립했는데, 소론은 세자인 장희빈의 아들을 밀었고, 노론은 숙종과 무수리 사이에서 태어난 연잉군을 지지했어."
"무수리? 그건 또 누구예요?" "사람 이름이 아니라 허드렛일을 하는 궁궐의 하녀를 가리키는 말이야. 그중 한 명이 숙종의 눈에 들어 왕자까지 낳은 거였지."
"그럼 노론과 소론 중에선 누가 이겼어요?"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왕위를 이어서 처음엔 소론이 이긴 것처럼 보였어. 하지만 경종이 4년 만에 죽은 뒤 연잉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결국엔 노론 세력이 권력을 잡게 됐지."
◇치우침 없이 '탕탕평평'한 정치를 향해
"연잉군은 1724년에 왕위에 올랐어. 조선의 21대 임금 영조였지. 영조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탕평책을 내세운 거였어. 탕평(蕩平)이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히 한다는 뜻으로, 유교 경전인 '서경'에서 비롯된 말이야."
어흠, 헛기침을 한 용선생이 목소리를 점잖게 깔았다. "듣거라! 조정 대신들이 붕당을 지어 서로 헐뜯고 다투는 데서 생겨나는 해로움이 지금처럼 심각한 때가 없었노라. 우리 조선은 땅이 좁아 인재가 그리 많지 않은데 대신들이 자기편 사람만을 쓰려 하고 서로 상대편을 공격하는 데만 힘을 쏟으니 나라의 정책이 올바로 설 수가 없다.
앞으로는 탕평의 뜻을 세워 인재를 공평히 쓰겠노라!" 곽두기가 반가운 표정으로 짝짝 손뼉을 쳤다. 용선생의 입이 흐뭇하게 벌어졌다.
"아! 영조가 탕평책을 내세우며 신하들과 함께 먹었다고 전해지는 음식도 있어. 탕평채라는 건데, 하얀 청포묵에 각 붕당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색의 채소와 고기, 김을 한데 버무려서 먹는 거야." 음식 이야기가 나오자 배가 출출한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영조도 붕당 정치의 거센 파도를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어.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데 반대했던 소론 세력들과 화해하는 데 실패했거든. 영조는 처음에는 노론과 소론에서 두루 신하들을 뽑아 썼지만 지방의 소론 세력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자 소론 신하들 대부분을 내쫓고 큰 벌을 주었어. 그뿐 아니라 붕당 싸움에 휘말려 아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지. 자, 사도세자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그러고 보니 붕당 정치는 어떻게 된 거죠? 동인과 서인이 대립하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고, 그중 북인이 광해군과 함께 쫓겨난 뒤 남인과 서인이 오랫동안 싸우다……."
조근조근 짚어 보던 선애가 잠시 뜸을 들이자 왕수재가 불쑥 끼어들었다. "결국 서인의 승리! 끝."
"아니, 끝이면 좋겠지만 더 있어. 서인은 남인과 겨루는 과정에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었어. 남인에 대해 강경하게 대하자고 주장하는 노론과 온건하게 대하자고 주장하는 소론이었지. 이 두 세력은 숙종의 뒤를 이을 왕을 누구로 정할지를 두고 대립했는데, 소론은 세자인 장희빈의 아들을 밀었고, 노론은 숙종과 무수리 사이에서 태어난 연잉군을 지지했어."
"무수리? 그건 또 누구예요?" "사람 이름이 아니라 허드렛일을 하는 궁궐의 하녀를 가리키는 말이야. 그중 한 명이 숙종의 눈에 들어 왕자까지 낳은 거였지."
"그럼 노론과 소론 중에선 누가 이겼어요?"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왕위를 이어서 처음엔 소론이 이긴 것처럼 보였어. 하지만 경종이 4년 만에 죽은 뒤 연잉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결국엔 노론 세력이 권력을 잡게 됐지."
◇치우침 없이 '탕탕평평'한 정치를 향해
"연잉군은 1724년에 왕위에 올랐어. 조선의 21대 임금 영조였지. 영조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탕평책을 내세운 거였어. 탕평(蕩平)이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히 한다는 뜻으로, 유교 경전인 '서경'에서 비롯된 말이야."
어흠, 헛기침을 한 용선생이 목소리를 점잖게 깔았다. "듣거라! 조정 대신들이 붕당을 지어 서로 헐뜯고 다투는 데서 생겨나는 해로움이 지금처럼 심각한 때가 없었노라. 우리 조선은 땅이 좁아 인재가 그리 많지 않은데 대신들이 자기편 사람만을 쓰려 하고 서로 상대편을 공격하는 데만 힘을 쏟으니 나라의 정책이 올바로 설 수가 없다.
앞으로는 탕평의 뜻을 세워 인재를 공평히 쓰겠노라!" 곽두기가 반가운 표정으로 짝짝 손뼉을 쳤다. 용선생의 입이 흐뭇하게 벌어졌다.
"아! 영조가 탕평책을 내세우며 신하들과 함께 먹었다고 전해지는 음식도 있어. 탕평채라는 건데, 하얀 청포묵에 각 붕당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색의 채소와 고기, 김을 한데 버무려서 먹는 거야." 음식 이야기가 나오자 배가 출출한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영조도 붕당 정치의 거센 파도를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어.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데 반대했던 소론 세력들과 화해하는 데 실패했거든. 영조는 처음에는 노론과 소론에서 두루 신하들을 뽑아 썼지만 지방의 소론 세력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자 소론 신하들 대부분을 내쫓고 큰 벌을 주었어. 그뿐 아니라 붕당 싸움에 휘말려 아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지. 자, 사도세자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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