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놋그릇·옹기·백자 마니아, 메리어트동대문 총주방장 디 살보]
DDP 샤넬쇼 뒤풀이서 한식 선보여 라거펠트 등 패션계 인사 사로잡아
"깨끗한 색감·따스한 질감의 그릇… 제가 만든 음식 돋보이게 해줘요"
최근 패션 브랜드 샤넬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연 '2015 크루즈 컬렉션 쇼'는 두 가지에서 화제였다. 패션 거장 칼 라거펠트가 우리 고유의 옷 한복을 리조트 룩으로 멋스럽게 풀어냈다는 점, 그리고 패션쇼 뒤풀이(애프터 파티) 잔칫상에 오른 정갈한 한식이다. 무형문화재 장인들이 만든 놋쇠 그릇(방짜 유기)에 갈비찜과 쌈밥, 온갖 종류의 전이 소복이 담겼고, 풋고추와 상추, 당근, 오이 등 채소 묶음이 쌈장과 함께 놓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돌솥 뒤로 카멜리아(동백꽃) 6000송이를 꽂아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나무처럼 꾸민 샹들리에, 그리고 우윳빛 뽀얀 달항아리가 탐스럽게 웃었다. 각국에서 온 패션계 유명 인사들이 입맛을 다시며 음식 주위로 몰려들었다.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라거펠트는 주방을 찾아 "판타스틱!"을 외쳤다. 패션쇼 당일 인스타그램은 '패피(패션 피플)'들이 맛깔스럽게 찍어올린 '샤넬표 한식' 사진들로 넘쳐났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스럽게 한국의 맛과 아름다움을 표현한 이는 이탈리아 출신 요리사 스테파노 디 살보(Di Salvo ·43). 현재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 호텔의 총주방장이다.

초여름 햇빛이 동대문을 달구는 오후, 디 살보 총주방장은 호텔 한편에 놓아둔 찬장에서 주섬주섬 그릇을 꺼내고 있었다. 백자와 놋그릇, 동그스름한 옹기다. 직접 사 모은 것들이라 했다. "한국인 눈엔 한국 그릇이 서양 그릇보다 밋밋하고 심심해 보일지 몰라도 제 눈엔 이보다 우아한 그릇이 없어요. 무심한 형태, 깨끗한 색감, 손끝에 닿는 질감이 마냥 따스해요. 제가 만든 음식을 돋보이게 해주죠."
까만색의 네모난 찬합을 들어올리며 그는, "이 그릇은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것처럼 일곱 번 정성을 다해 옻칠한 것이다. 그 뚝심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한데 모으면 위로 높아지지만 따로 나눠 놓으면 바닥에 넓게 퍼지는 이 찬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는 그만의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세트'도 만들어 선보였다. 찬합의 각 층마다 과일 젤리 타틀렛, 갓 구운 스콘과 마카롱, 쿠키 등 달콤한 디저트를 담아 고운 빛깔의 홍차와 함께 내놓는다.
이탈리아 북부 제노바에서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 때부터 호텔 학교에서 요리를 배웠다. 로마의 에덴 호텔, 투스카니의 일 펠리카노 호텔 등 최고급 호텔 주방에서 일하다가 2001년부터 방콕과 상하이의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경력을 쌓았다. 2007년 10월 한국에 왔다. 배우 옥소리와 스캔들이 난 이탈리아 요리사가 한국을 떠나면서 상하이에 있던 그가 급작스럽게 총주방장 제안을 받았다. "새로운 곳에 도전할 수 있어서 반가웠어요." 남들이 샘플 음식 10개를 만들 때 그는 20개를 내놓는다. 음식 사진도 직접 찍어 일일이 설명을 단다. 야외에서 소고기 패티(햄버거용 고기) 하나를 굽더라도 보조에게 안 맡기고 직접 한다.
연애할 때 손잡고 이천 도자기축제를 보러 다녔던 한국인 아내(신혜영 디올코스메틱 부장)는 남편을 "나보다 더 한국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장모가 담근 김치를 가장 좋아하고, 파크하얏트 부산에서 총주방장으로 근무할 땐 자갈치시장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갈치와 빨간고기(눈볼대)를 날마다 요리해 먹었다. 집의 절반을 채우고 있는 옛날 항아리에 김치를 담가 먹고 옹기에서 된장을 푸는 게 그의 꿈이다. 그러면서 "아침 8시 반 출근해 밤 9시 반에 퇴근할 만큼 바쁘지만 그때까지 참고 기다렸다가 매일 10시 반 나와 함께 저녁 먹어주는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말수 적고 농담과는 거리 먼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셰프는 기초가 탄탄해야 창의력도 생깁니다. 토마토 소스와 멸치 육수를 맛있게 만들고 칼질, 익히기, 굽기를 완벽하게 해낼 줄 알아야 하죠." 초호화 빙수로 화제가 된 '돔 페리뇽 빙수'도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2015.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