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육아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열여덟 살 고3 자녀는 부모의 손을 놓아야 할 때다. 밀착 보호와 간섭이 어울리지도, 통하지도 않는다. 그런 관심은 아이가 열 살이 되기 전 집중됐어야 했다. 큰애는 말문을 떼자마자 매일 아침 “오늘 야근이냐”고 물었다. 만 3∼5세엔 밤 9시까지 운영하는 종일반 어린이집에 다녔다. 다섯 살 때 폐렴으로 1주일간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휴가를 못 냈다. 내가 폐렴에 걸린 것도 아닌데 인터뷰 약속을 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친정어머니와 육아 도우미가 번갈아 병실을 지켰다.
영·유아기 자녀를 키우는 시기는 대부분의 워킹맘에게 위태위태한 고비다. 가까스로 들어간 직장에서 실력으로나, 인간관계로나 탄탄한 입지를 다져놓지 못한 채 임신과 출산을 한다. 임신·출산기엔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야근과 출장과 술자리가 모두 부담스럽다. 그래서 출산 후 복귀한 워킹맘은 마음이 급하다. 과잉 의욕을 불태우고, 육아에 연연해하지 않는 척 ‘통 큰 엄마’ 흉내를 내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큰애가 초등 2학년이었을 때다.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되냐”고 물어 왔다. “낮에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면서였다. 아이의 외롭고 공허한 심정이 전해졌다. “할 말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라”고 했다. 약속을 못 지킨 건 나였다. 아이는 생각보다 자주 전화를 했다. 통화가 곤란한 상황이 많았다. 아이의 전화를 받아 마치 공적인 일인 양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라고 말한 뒤 끊어 버리곤 했다.
막상 고3 엄마가 돼 보니 아이에게 해줄 일이 별로 없다. 이제 아이가 부모보다 더 긴 시간 집을 비운다. 전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 마음은 친구에게 털어놓는 눈치다. 떠도는 입시 정보를 물어다 주는 수준인 엄마의 뒷북 관심에 아이는 도리어 혼란스러워한다. 엄마 손이 절실한 시기는 지난 것이다.
다음주부터 만 3세 이하 자녀를 둔 여성 판사를 대상으로 하루 4시간만 근무하는 단축 근무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모쪼록 꼭 성공 사례가 돼 곳곳에서 제때 엄마 노릇 할 수 있는 직장 문화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이지영 문화부 차장